페르야 수고스럽겠지만 이것도 등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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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길드명’ 또는 ‘팬사이트 명’
ㅇ 플레이 ‘렐름명’
ㅇ 주 플레이 ‘서버명’
ㅇ ‘길드주소’ 또는 ‘팬사이트 주소’
ㅇ ‘관리자’ 또는 ‘길드 마스터’ 이름
ㅇ 관리자의 카멜롯 계정(ID)
ㅇ 관리자의 E-mail 주소

윽 큰일…

신던전의 위치를 몰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맵을 구하고 현재 제 위치와 꼼꼼히 맞춰보고 있는 중이지요
애르기헴인가 함인가에 샤먼을 주차시켜 놓고 나왔는데, 지도를 보니
더 막막해 지는 느낌이란 -_-;
누가 신던전 위치 좀 알려줘요 -_-;

리버의 모든것

생산 비용 200 M 100 G
Pylon(파일런) 소비 4
방어 종류 대형
무기 종류 폭발형
공격 형태 원거리 공격
(지상 유니트만 공격 가능)
공격 범위 9
시야 범위 10
방어력 0/0
에너지/쉴드 80/100
주요 기능 Scarab(스캐럽)을 이용한 공격
(Terran의 Siege Tank보다 더
강력한 지상 공격 유니트)
생산 시간 70
생산 건물 Robotics Facility
(로보틱스 퍼실러티)
필요 건물 Robotics Support Bay
(로보틱스 서포트 베이)
지상 공격력 100
공중 공격력 0
셔틀 탑승수 2

특수기능
Create Scarab(크리에이트 스캐럽)

단축키: <R>
Reaver(리버)는 Scarab(스캐럽)이라 불리우는 소형 로봇 드론을 제작, 탑재할 수 있다. Scarab(스캐럽)은 적 목표물이나 기지를 향해 단체로 발사된다. Carrier(캐리어)에 탑재되는 Interceptor(요격기)와는 달리 적에게 돌진한 후 폭발하여 강렬한 전자기장을 뿜어냄으로써 적에게 엄청난 타격을 준다.

알비온에 통합이 있었군요

드디어 라운드와 우리쪽 동맹이 합쳐진듯 하군요..

리딩이 라운드가 된것은 어캐 보면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

어찌 되었던 간에..그렇게 됐음으로 ^^;

거대 동맹의 탄생이라는데 알비에도 앞으로 광명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어여 내 버프펫 쫄해줘요 – _-;;

삼미 슈퍼스타즈 이야기..마지막

5. 마지막 시즌, 85년 전기리그.

슈퍼스타즈와의 3년이 좀 넘는 기간동안 인천야구팬들에게는 ‘탈꼴찌’라는
졸라 소박한 꿈만이 허락되었다. 전생에 무슨 업보가 그리 많았길래,
이 좋은 개명천지에 꼴찌소년으로 살아야 했었는지.

85년엔 게임수가 100경기에서 110경기로 늘어난 해였다.더 늘어난 게임수는
고스란히 인천소년들에겐……늘어날 절망감의 깊이였다.

슈퍼스타즈가 참여했던 마지막 시즌인 85년 전기리그에서 당스꼴찌 승률 2할
대를 마크한다.

부산, 대구, 서울, 광주팬들과의 약속을 절대로 저버리지 않은 슈퍼스타들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사나이들의 의리란………바로 이런 것이다.

슈퍼스타들이 청보로 팔려가는 바로 요시점에서 다수의 인천소년들이 축구팬
으로 전향을 선언한다.또는 이제 막 80년대를 말아먹을려고 하는 타이거즈의
팬이 되거나. 그래도 4년은 견뎌냈으니, 대단한 인내심이었다.

마늘하고 쑥만으로 4년을 견디라고 했으면 아마 한반도엔 곰하고 호랑이
천지였으리라……

그와중에 핀토스의 창단은 인천야구에 일대변혁을 가져올 것인가?

인천야구의 비상을 눈에 흙이 들어가기전에 지켜보려던 소년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비웃기라도 하듯 삼성은 신생팀 청보의 앞길을 축하하는 축포를 쏘
아주었다.

청보전에서 허규옥, 장효조, 박승호의 1이닝 3홈런이 나왔던 것이다.그나마
남아있던 인천소년팬들을 학교로 돌려보낸 사건이었다.다혈질 소년들은 눈에
흙을 뿌리기도 하였다.

꿈만 가득하고 세상의 아름다운 것만 보아야 할 나이에,

‘이번 생은 틀렸어….
다음 세상엔 라이온스팬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라며 자포자기 인생관을 형성하고 말았던 것이다. 핀토스는 프로야구의 바
닥판 슈퍼스타즈의 후계자답게, 하위팀의 등불, 상위팀들의 우황청심환 역
할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슈퍼핀토스의 팬으로 남아있는 일은 소년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인내
심과 자제력을 요구했다.

희망은 인내하는 가슴 속에서 꽃핀다고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을 참고 기다
리는 것은 인내가 아니라 미련곰팅이 같은 짓이라는 걸 시니컬보이의 직관
으로 서서히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85년은 86월드컵을 앞두고 축구열풍이 몰아치고 있었으니,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었다.

그 얼마만의 월드컵본선 진출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하여간 전국은 월드
컵으로 들썩 들썩거렸고, 그중에서도 인천소년들은 더욱 더 축구에 열
중했다.

….Good-bye…Super-Stars…………I LOVE SOCCER!!!

86년의 월드컵과 88년의 올림픽의 열광의 도가니속에 박철순과 이만수를
좋아하며, 슈퍼스타즈에 울던 인천소년들은 그렇게 야구와 멀어졌다…….
적어도 89년의 가을까지는.

– THE END

붙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접어야만 하였다… 인기없다고 -_-;
나중에 푸하스포츠라도 생기면, 또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야구를 여전히 좋아하긴 하지만 평생을 좋아해도, 82년만큼 좋아하진 못할 것
같다. 동네야구에서 최초로 타석에 섰던 기억… 몸으로 날아오는 공을 피하
지 못하고 몸에 맞고 좋아라하며 1루로 뛰어가던 모습이 며칠전처럼 생생하다.

가장 가지고 싶어했던 가죽글러브. 마침내 글러브가 생기던 날, 글러브를 베
고 잠을 잤다.캐치볼을 하다가 만화의 주인공인 것처럼 가장 힘껏 던지다가
아버지 이마에 공을 맞추고 하루종일 우울했던 기억도 난다.

나의 슈퍼스타즈가 매일 처참하게 지던 슬픈 기억…..매일 우울한 패전보.
영원한 생명을 찾아 메텔과 함께 999호를 타고 소년시절을 달렸던 철이처럼
내 유년시절의 기억은 언제나 슈퍼스타즈와 함께였다.

어린마음에 가장 미워했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야구팀… 슈퍼스타즈.

안녕~ 슈퍼스타즈~ 안녕~~ 소년시절아~~

삼미 슈퍼스타즈 원년 어린이회원

삼미 슈퍼스타즈 이야기..8

3. 모든 것은 제자리로……..

작년 13승을 거두며 평범한 투수로 전락했던 장명부는 세번째 시즌을 맞아,
다시 비범한 투수(시즌최다패전)로 변신을 하며,인천야구의 희망에서, 슈
퍼스타즈의 미운털로 전락하고 있었다.

30승을 달성하고도 프론트로부터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못한 너구리는 성의
없는 투구로 일관하면서, 원래부터도 그랬지만 자꾸만 타자들을 향해서 공
을 던지고 싶어지는 날이 많아졌다.그렇게 슈퍼스타즈의 미운털에서 프로야
구의 미운털이 되가고 있었다.

80년대의 강자, 라이온스는 이만수와 장효조를 앞세워 84년에 이어 타격타
이틀을 완전히 밥말아먹고 있었다. 조금 다른것은 타이거즈의 김성한이 타격
부문에 자꾸 오리궁둥이를 들이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썩어도 준치’콤비 중 백인천은 삼미의 유니폼을 벗어던지게 된다.슈퍼스타
즈를 맡아서 탈꼴찌할 자신이 없었나보다.세상엔 인간의 힘으로 바꿀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된 것이다.

당시 슈퍼스타즈는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리우고 있었으니, 백인천씨는 상
황판단을 빠르게 한 셈이었다.

최악이라는 단어는 사전에만 존재할 뿐, 더이상 나빠질 수 없는 최악의 상황
이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슈퍼스타들에게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

원년에 세웠던 16연패라는 기록을 깰수 있는 건, 역시 자신들뿐이라는 걸 새
삼스럽게 증명해 보이며, 조만간 깨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연패기록을 18연패로 가볍게 늘여놓았다.
들어는 봤나?…1.8.연.패…….1…8 수십년의 일본프로야구의 기록을
가볍게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삼미가 수놓았던 주옥같은 기록들이 이 연패기록앞에선 모두 빛을 잃고, 초
라해져버렸다.
연승이나 연패기록은 실력만으로 되는게 아니라 운이 따라야 한다.슈퍼스타
즈는 하늘이 내린 팀이었던가 보다…….하늘이 버린 팀.
하지만 당시 인천소년야구팬들은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세상살이란게 다 그렇고 그런것…….
슈퍼스타즈와 질곡의 4년을 함께하며, 인천소년들은 애늙은이가 다 되었던 것이다.

에허라 디여~~~

결국 슈퍼스타즈는 18연패에 종지부를 찍는 1승과 함께, *청보에 매각되는
시련을 겪게 된다.

그리고 OB곰팅이들에게 16:0의 최다점수차 완봉패를 기록하며 1게임 최다피
안타 기록등, 원년에 세웠던 기록을 하나씩 갈아엎어가고 있었다.
슈퍼스타즈가 꼴찌를 면하는 길은 한가지 뿐인듯 했다. 그것은 포항 아톰즈
축구단을 프로야구에 끌어들이는 방법이었다.

충격적인 18연패를 당하면서 슈퍼스타들은 점점 아래로 추락했다. 가난한
집에 효자난다고, 삼미의 유일한 슈퍼스타 정구선만이 3년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슈퍼스타들은 18연패에 종지부를 찍는 1승과 함께, 라면과 청바지, 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주종목으로 하는 내 평생 듣도보도 못한 청보라는
기업으로 매각되는 시련을 겪게 된다.

4. 추억의 타이거즈.

그땐 지금처럼 이빨, 손톱 발톱 다 빠지고, 게다가 끼니도 제대로 떼우지 못
하는 그런 ‘무늬만 호랑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타이거즈가 80년대의 팀 라이온스를 넘어서 십수년간 최강의
팀으로 질주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타이거즈가 80년대의 팀 ‘라이온스’를 가볍게 생까 버리고, 나아가 90년대까
지 질주하기 위해 중대한 첫발을 디딘 때가 바로 85년이었다.

이후 몇년간 원년우승감독 김영덕이 ‘멍게’ 아니 해삼,말미잘이라는 말만 들
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고,밥먹다가도 숟가락을 내팽개쳐버리게 만든,

무등산 ‘멍게’ 아니 나고야의 멍게, 무등산 폭격기 썬동렬이 타이거즈 유니
폼을 입은 것이다.

80년대 중반 무적삼성과 90년대 막강빙그레로 이어진 그의 감독생활은 선동
렬로 인해 매우 우울할 수밖에 없었고, 그는 술마시는 날이면 하늘을 향해
절규하곤 했다.

“신이시여~~, 왜 김영덕을 낳으시고, 선동렬을 내리셨나이까……

………………그럴라면, 같은 팀에서 뛰게 해주시든가…….

국보 선동렬은 후기리그부터 반쪽시즌만을 참여했지만 신인왕 이순철과 함께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86년시즌 대폭발의 전주곡을 연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