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 이야기..마지막

5. 마지막 시즌, 85년 전기리그.

슈퍼스타즈와의 3년이 좀 넘는 기간동안 인천야구팬들에게는 ‘탈꼴찌’라는
졸라 소박한 꿈만이 허락되었다. 전생에 무슨 업보가 그리 많았길래,
이 좋은 개명천지에 꼴찌소년으로 살아야 했었는지.

85년엔 게임수가 100경기에서 110경기로 늘어난 해였다.더 늘어난 게임수는
고스란히 인천소년들에겐……늘어날 절망감의 깊이였다.

슈퍼스타즈가 참여했던 마지막 시즌인 85년 전기리그에서 당스꼴찌 승률 2할
대를 마크한다.

부산, 대구, 서울, 광주팬들과의 약속을 절대로 저버리지 않은 슈퍼스타들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사나이들의 의리란………바로 이런 것이다.

슈퍼스타들이 청보로 팔려가는 바로 요시점에서 다수의 인천소년들이 축구팬
으로 전향을 선언한다.또는 이제 막 80년대를 말아먹을려고 하는 타이거즈의
팬이 되거나. 그래도 4년은 견뎌냈으니, 대단한 인내심이었다.

마늘하고 쑥만으로 4년을 견디라고 했으면 아마 한반도엔 곰하고 호랑이
천지였으리라……

그와중에 핀토스의 창단은 인천야구에 일대변혁을 가져올 것인가?

인천야구의 비상을 눈에 흙이 들어가기전에 지켜보려던 소년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비웃기라도 하듯 삼성은 신생팀 청보의 앞길을 축하하는 축포를 쏘
아주었다.

청보전에서 허규옥, 장효조, 박승호의 1이닝 3홈런이 나왔던 것이다.그나마
남아있던 인천소년팬들을 학교로 돌려보낸 사건이었다.다혈질 소년들은 눈에
흙을 뿌리기도 하였다.

꿈만 가득하고 세상의 아름다운 것만 보아야 할 나이에,

‘이번 생은 틀렸어….
다음 세상엔 라이온스팬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라며 자포자기 인생관을 형성하고 말았던 것이다. 핀토스는 프로야구의 바
닥판 슈퍼스타즈의 후계자답게, 하위팀의 등불, 상위팀들의 우황청심환 역
할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슈퍼핀토스의 팬으로 남아있는 일은 소년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인내
심과 자제력을 요구했다.

희망은 인내하는 가슴 속에서 꽃핀다고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을 참고 기다
리는 것은 인내가 아니라 미련곰팅이 같은 짓이라는 걸 시니컬보이의 직관
으로 서서히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85년은 86월드컵을 앞두고 축구열풍이 몰아치고 있었으니,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었다.

그 얼마만의 월드컵본선 진출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하여간 전국은 월드
컵으로 들썩 들썩거렸고, 그중에서도 인천소년들은 더욱 더 축구에 열
중했다.

….Good-bye…Super-Stars…………I LOVE SOCCER!!!

86년의 월드컵과 88년의 올림픽의 열광의 도가니속에 박철순과 이만수를
좋아하며, 슈퍼스타즈에 울던 인천소년들은 그렇게 야구와 멀어졌다…….
적어도 89년의 가을까지는.

– THE END

붙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접어야만 하였다… 인기없다고 -_-;
나중에 푸하스포츠라도 생기면, 또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야구를 여전히 좋아하긴 하지만 평생을 좋아해도, 82년만큼 좋아하진 못할 것
같다. 동네야구에서 최초로 타석에 섰던 기억… 몸으로 날아오는 공을 피하
지 못하고 몸에 맞고 좋아라하며 1루로 뛰어가던 모습이 며칠전처럼 생생하다.

가장 가지고 싶어했던 가죽글러브. 마침내 글러브가 생기던 날, 글러브를 베
고 잠을 잤다.캐치볼을 하다가 만화의 주인공인 것처럼 가장 힘껏 던지다가
아버지 이마에 공을 맞추고 하루종일 우울했던 기억도 난다.

나의 슈퍼스타즈가 매일 처참하게 지던 슬픈 기억…..매일 우울한 패전보.
영원한 생명을 찾아 메텔과 함께 999호를 타고 소년시절을 달렸던 철이처럼
내 유년시절의 기억은 언제나 슈퍼스타즈와 함께였다.

어린마음에 가장 미워했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야구팀… 슈퍼스타즈.

안녕~ 슈퍼스타즈~ 안녕~~ 소년시절아~~

삼미 슈퍼스타즈 원년 어린이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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