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 이야기..6

⊙ 철완너구리 장.명.부.

1983년 벽두에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국내 최초로 재일동포선수 수입이
삼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동계훈련비 아껴서 어디다 썼는가 했더니……

일본프로야구와의 격차는 방망이 거꾸로 잡고도 3할을 칠 백인천에 의해
여실히 드러났으며, 더이상 잃을 것 없는 삼미는 여기서 돌파구를 찾으려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초인’장명부는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컬트야구단, 슈퍼스타즈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는 장명부의 볼배합까지 파악할 수 있는 눈은 없었지만,어쨌든 그때는
디게 성의없이 던진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당시 한국타자들
머리위에서 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있는 타자들에게는 전력을 다하지 않는 피칭을 하다가 위기의 순간이나
강타자들에게는 성의를 쫌 보여줬다. 야구역사상 타자들이 최고로 무시당하는
순간이었다. 여느 투수들과는 상당히 구별되는 투구스타일였다고 기억한다.
힘으로 압도하기 보다는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투구패턴에 가끔씩 섞어 던지는 빈볼…
명부가 생각하는 데로 모든 타자들은 놀아나고 있었다. 일본프로야구의 15승 투수로
팀을 우승까지 이끌었던 장명부에게 갓 태어난 한국프로야구가 완존 한수 배우는
순간이었다. 아직 빈볼의 역할이나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던 국내팬들에게
타자의 몸쪽, 머리쪽을 겨냥하는 빈볼과 넘어진 타자를 향해 비웃듯 던지던 특유의
실실쪼개는 입가의 미소
하여간……그는 진정 ‘마인’이었다.
장명부는 위협투구의 진수를 보여줌으로써,한국프로야구에 써스펜스를 가미하였으며.
또한 메이저리그급 몸싸움을 유도하여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에 수년앞서 한국적
액션스페타클을 보여주게된다.

‘괴인’ 장명부는 3주라는 짧은 기간에 8연속게임 완투승 이라는’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기록을 달성한다. 등판간격 조정이나 선발 마무리 가릴 것없이 마구잡이로 나서 슈퍼스타즈
경기의 60%이상 등판을 했던 ‘초인’ 장명부 최근의 조웅천이나 이혜천에 비하면
머 특별할 것도 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무엄하다!

인조인간 마징가도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36번의 완투가 있었다.160게임도 아니고
100게임을 치르는 동안에 말이다. 야구탄생이래 가장 야구를 우습게 본 사나이의 등장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처럼 선발, 중간, 마무리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았고 투수진 부족으로 인해,
에이스는 열댓번의 완투를 하기 마련이었으며 이닝 수를 200이닝을 넘기는 경우는 흔했다.
최동원, 김시진, 박철순 등 초창기의 명투수들은 모두 시대적요구(?)에 의해 상당히 혹사를
당했다.다만 장명부는 묵묵히 국어사전을 고쳐 쓰고 있었다.
혹사?? 무리한 등판??
83년 장명부는 427과 1/3이닝을 던졌다. 당대의 철완 김시진(229 1/3이닝)과 최동원(208 2/3이닝)을
합쳐야 비슷한 이닝수가 나올 따름이었다.
하이콜드 냉장고같은 초절전 절약형 투수도 아니었던 그가 이정도 이닝을 던졌다는 것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중노동이었다.전날 완투 후 다음날 마무리로 나서는 그의 엽기적
투구행각에 대해
‘정신력의 위대한 승리다’
‘참을 수 없는 무지의 강인함이다’
‘정신조차 초월한 히로뽕 기운이다’ 라는 다양한 설이 있으나,

………아직까지 정설은 없다.

20승투수는 몇 년 안에 다시 등장할 수 있겠지만,장담컨데, 국내프로야구에서 30승투수는 육백만불의
사나이나 바야바가 야구선수로 데뷔하기 전엔 불가능할 것이다.

‘바.야.바….우워어어…우워어어. <—- 바야바

‘바야바가….자신없다는데여? <—- 바야바 말 해석중

그러고 보니…..좀 있으면 김병현도 육백만불의 사나이가 되는구나..
………하여간 장명부는 그는 진정한 ‘마인’이었다.

(*참고 : 30승투수
80년대 일상적인 용어였던 20승이 넘기힘든 벽이 되어버린 지금, 30승? 그건 말이쥐
올해1년 마운드에서 불살르고, 야구인생 불꽃처럼 막내릴 각오하고 정민태 정도의 투수가
어제 완투하고 오늘은 마무리로 무대뽀 등판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물론 박진만이
30-30을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다가 영영 밥숟가락 놓는 불상사가 생길수도 있다. )

한국프로야구를 밥말아먹었던 장명부라는 초인이 가져다준 상승효과로 슈퍼스타즈의
팀전력은 수직 급상승했으며, 잠시 그들은 자신들이 도깨비야구단임을 망각하고
도깨비방망이라도 되는 듯이 기염을 토하며 맹타를 휘둘렀다.

1년을 암행어사 이도령 기다리는 춘향이 심정으로 학수고대 기다린 임호균, 김진우와
엉겁결에 얻은 정구선의 가세는 큰힘이 되었다.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히로시마 카프에서
명부 따라온 영구의 방망이도 믿거나 말거나에 나나올 법한 삼미의 83년시즌을 연출하는데
한몫을 했다.

참고) 삼미 팀내 다승순위
장명부(30승) – 임호균(12승) – 정성만(3승 -_-;)

괴물투수 장명부의 활약으로 삼미는 전기리그 선두를 질주한다…와우!
작년의 15승 트로이카에 당삼 15승투수인 김시진이 쁘러스된 라이온즈는 15승 트로이카가
5승트로이카로 변신하며, 전년우승팀 베어즈와 다시 한번 바닥에서 라이벌전을 펼친다.

부채꼴 타법을 휘두르던 타격의 달인 장효조가 바람 난 백인천 선수에게서
타격왕타이틀을 접수받고,무너진 마운드를 홀로 감당해냈던 김시진(17승)이위안이될뿐.
아니구나….
시즌전 국가대표의 대거보강으로 강호로 지목되었지만 함께 바닥에서 해메는 로떼와,
작년 커다란 아픔을 안겨주었던 곰돌이도 함께 버벅거린다는 사실이 상당한 위안을 주었다.

원년 14명의 선수로 당당히 출범했던 타이거즈는 다크호스로 지명되기는 했지만,
우승은 아무도 점치지 않았다. 삼미는 최선을 다해서 프로야구를 쫌 재밌게 해조라….라는
전문가들의 평이었다.

그러나 이 두팀이 전기리그의 우승을 다투고야 말았던 것이다.사실 해태의 선수부족은
심각한 상태였다.

프로야구사상 깨지지 않을 마의 기록 가운데 하나인 김성한 선수의 10-10클럽…….
10홈런-10승 기록이 82년에 세워졌을 정도이니…………
20세기에 깨지지 않은 82년의 놀라운 기록.

1위 : 박철순의 22연승
2위 : 김성한의 10승투수, 타점왕 동시등극
3위 : 삼미의 1할대승률 (21세기에도 힘들듯 )

슈퍼스타의 어처구니없는 선두질주를 막을 자는 다크호스 타이거즈뿐이었다.
타이거즈에 박빙의 선두를 유지하던 전기리그 막판 레이스에서,청룡과의 3연전에서
어처구니없던 이선웅의 주루사가 발생한다.8회 0:1로 뒤지고 있던 2사 만루의 기회
3루 이영구, 2루 이선웅, 1루 거북이 김진우 타이거즈에 쫒기며 똥줄타던 김진영
감독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타석에서 들어선 최홍석이 회심의 적시타를 날리고 말았다.
3루주자 영구가 홈인, 2루주자 이선웅 거의 홈인 1루주자 거북이 김진우……3루까지 욕심…..태그 아웃.
8회종료. 2:1 인가? 1:1 심판선언! 이선웅 아직 거의 홈인한 상황에서 홈플에이트 앞에서 김진우
구경하다가 김진우 먼저 아웃. 법대로 하자면 당연 1:1……하지만 우리가 어디 법대로 한적있나?
열받은 김진영 감독 박차고 뛰어나와 대갈일성.

‘사실 거의 다 홈인 아니냐…..쫌 바줘라…어?

상황적으로 보면 안타까운 점도 있었으나…..심판은 법대로 한다. 안그래도 4회때 판정불만족으로
열받은 김진영 감독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을 몸으로 보여준다. 발차기~이얍~
그라운드는 이들을 말리는 선수들로 뒤엉켰으며, 평소 맘에 안드는 놈 몰래 한대씩 쥐어박는
통에 금새 아수라장이 되었다.
결국 1:1상황에서 끝내기의 왕자 이종도의 안타로 게임끝.

당시는 명랑사회건설을 국시로 삼았던 전두환 대통령 각하로 인해 변웅전도 명랑운동회를
매주 일요일 진행하던 시절이었다. 일벌백계 차원에서 한놈만 팬다는 무대뽀 정신으로
젤로 만만한 삼미 감독을 구속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로써 명랑프로야구의 초석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결국 청룡에 3연전을 내준
수퍼스타들은 이후 해태에 내준 선두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결국 전기리그에서 1게임차로
해태에 뒤져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결국 운은 거기서 다했던 것일까……….또한 후기리그에서도 전기에 그들의 발목을 잡았던
청룡에 이어 연속 2위를 기록하고 만다.
그리하여 한국시리즈는 그후 10년간 ‘그들만의 리그’였던 것이다.
꿈결같았던 83년이후, 제정신을 차린 삼미는 이후 청보와 태평양으로 삼단변신을 하며
‘패’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싹 갈아엎어 버린다. 그 후 89년까지 인천연고팀은 야구팬들의
기대를 져 버리지 않고,성적의 마지노선을 든든히 지키는 최후의 파수꾼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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