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 이야기..2

★ 도깨비팀 삼미 슈퍼스타즈와 위대한 탄생

70년대후반부터 한때는 구도였다는 인천…….50년대래요…..50년대…… 들어는 봤나? 구도인천…..

인천을 연고로 해서 현대가 원래 프로야구에 참여하기로 했었으나,

왕회장의 딱 한마디에 이유불문 그냥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다.

‘하지마’

이때 홀연히 등장한 흑기사가 있었으니, 바로 삼미였다.

프로야구가 좌초할 위기에서 몸을 던져 구원한 삼미……

그렇다……삼미는 프로야구의 구세주였다. 모두들 입을 모아 이야기 했다.

‘삼미가 머 하는 회사야?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삼미에 대해 잠시 설명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이제는 찾기 쉽지 않지만, 집앞 슈퍼로

가서 펭귄 복숭아 넥타를 찾는다. 편의점에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흔한 물건이 아니다.

찾았다면 사가지고 집으로 맛있게 넥타를 따서 마시도록 하자.

그리고 빈깡통을 집어 들고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 그것이다.

당시 모든 황도, 백도, 복숭아 넥타 등의 깡통을 생산하던 것이 바로 삼미였던 것이다.

드러나기보단 음지에서 희생하는 삼미의 기업문화가 바로 프로야구에도 이어졌던 것이다.

하여간에 이렇게 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갑자기 없던 팀을 6개나 만드니까, 젤로 문제는 선수 수급이었다.

서울은 오비 곰돌이하고 엠비씨 청룡이 나눠가져도 두개의 강팀이 나올 정도로

선수자원이 넉넉했다.

70년대 국가대표 양성소 역할을 했던 대구는 실실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히히히…히히히…

국가대표급으로 주전을 구축한 로떼도 마찬가지.

다만 부족한 선수에 그나마도 국가대표 경력을 가진 이가 전무한 한 팀이 있었다.

스타하나 없는 그 팀의 이름은 바로 슈퍼스타즈.

유일한 스타였던 한국의 베이비루스, 아시아의 홈런왕 박현승 감독만이 자신있는

목소리로 당당히 이야기 했다.

‘정신자세가 중요한게 아닙니까. 지켜봐주십시오.

맹장아래 약졸없다는 심정으로 인천야구팬들은 그래도 행복했다.

그러나…….시즌을 치르고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후에 알게되었다.

‘맹장은 맹장이고…..약졸은 약졸이지……..

박감독은 또한 불명예스러운 퇴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바둑도 아니고…..정신만 갖고 안되나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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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너무나 짜증났고 챙피했던 그들을 그렇게도 기억속에서 지워 버리고

싶어했던 그들을 쉽게 잊을 수 만은 없는건, 군산상고, 신일고, 경북고, 천안북일고 등

쟁쟁한 지방명문고의 잔치였던 최고의 인기 스포쓰, 고교야구에선 언제나 타인, 방관자,

구경꾼이었던 인천의 소년 야구팬들에게, 이제 막 출범한 프로야구에서

당당히 우리팀을 가졌다는 가슴 두근거리던 기억을 선물해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동네 아이들하고 진정한 거금 5000원을 들고, 어린이 회원에 가입하기 위해 줄을 서며

설레던 순간과, 어린이 회원들에게 나누어주었던 가방 속에서 방수돗자리, 썬캡, 회원카드,

*야구잠바, 야구모자 등을 꺼내며 행복해 하던 기억 때문에, 어처구니 없는 성적에

침튀기며 *독설을 퍼부으면서도 그들을 미워할 수는 없었는 모양이다.

* 우린 그렇게 씨니컬보이가 되었다.

* 참고
슈퍼스타즈 야구잠바 – 몸통부분은 곤색, 소매부분은 하얀색으로 80년대의 컬트 야구단
삼미에게 어울리지 않게 평범하다. 하지만 그들은 평범함을 온몸으로 거부했다.

하얀색 소매엔, 곤색의 이따시만한 별이 바바박 박혀 있었다.
즉 삼미 어린이회원들은 원더우먼의 팬티를 연상시키는
야구잠바를 입고 다녀야했던 것이다.

인천지역에선 삼미에 대한 애정으로 요 야구잠바를 입고,
학교에 등교하는 대담한 소년들이 한반에 몇명씩 관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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